
1. 작품 개요 – 폐허 속에서 드러난 야성의 실체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의 『파리대왕』은 1954년 발표된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로, 문명과 야만, 인간 본성의 어두운 이면, 권력과 집단성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담고 있다.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이 생존을 위해 사회를 만들어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명의 규율은 사라지고 본능적 폭력성과 권력 투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이면은 충격적일 만큼 사실적이고 냉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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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줄거리 요약 – 소년들의 파괴된 낙원
• 비행기 사고로 남태평양의 무인도에 갇힌 수십 명의 영국 소년들.
• 그들은 어른 없이 스스로 사회를 조직하고 생존을 도모한다.
• 초반에는 질서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점차 권력 투쟁, 불안과 공포, 원시적 의식 속에서 야만성이 드러난다.
• 지도자 랄프와 사냥꾼 잭, 지혜로운 피기, 순수한 사이먼 등 인물들이 각기 상징적인 역할을 하며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형성한다.
• 결국, 죽음과 폭력, 혼란 속에서 문명의 가치는 무너지고, 무고한 희생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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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핵심 주제 – ‘파리대왕’은 누구인가?
1)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인가?
작품은 루소의 낙관적 인간관과 반대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에 기울어질 수 있다”는 토마스 홉스식 인간관을 문학적으로 드러낸다.
• 무인도는 인간이 사회적 규율 없이 놓이면 어떻게 본능에 굴복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실이다.
• 골딩은 “문명은 인간의 악을 억제하는 얇은 막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2) 파리대왕은 ‘사탄’의 상징
• 작품 속에서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은 돼지 머리에 꽂힌 파리떼가 들끓는 형상으로 등장하며, 이는 구약성서의 악마 ‘벨제붑’을 상징한다.
• 결국 이 존재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공포, 광기, 파괴 본능을 대변한다.
• 사이먼은 이 ‘파리대왕’과 환청을 통해 대화하며, 인간 내부에 악이 존재함을 깨닫지만, 곧 집단에 의해 비극적으로 희생된다.
3) 문명의 붕괴와 권력의 민낯
• 랄프는 합리와 민주주의를 상징하지만, 잭의 야성적 리더십에 밀린다.
• 사냥, 불, 제사 등의 원시적 행위는 폭력적 본능의 승리를 보여준다.
• 문명은 조직되고 합리적인 리더십만으로 유지될 수 없고, 공포를 다루는 방식이 권력의 핵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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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물 분석 – 상징으로 읽는 캐릭터들
• 랄프(Ralph): 질서와 합리성, 민주주의의 상징. 그러나 집단의 감정과 공포 앞에 무력하다.
• 잭(Jack): 욕망, 힘, 폭력의 화신. 집단 본능을 자극하며 권력을 장악한다.
• 피기(Piggy): 지성, 이성의 상징. 그러나 육체적 약함 때문에 무시당하며 희생된다.
• 사이먼(Simon): 순수함과 영적 통찰을 지닌 인물. 진실을 깨달은 예언자지만,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 쌍둥이 샘과 에릭: 이도 저도 아닌 회색 지대, 대중의 흔들리는 민심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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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학적 의의 – ‘문명’이라는 허상의 균열
『파리대왕』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인간이 얼마나 쉽게 폭력과 전쟁에 굴복하는지를 목도한 시대적 충격 속에서 쓰였다.
• 이성과 교양, 교육으로도 인간의 악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는 골딩의 메시지는 당시 독일 나치즘과 전쟁범죄의 기억과 맞물려 더 강한 설득력을 얻었다.
• 골딩은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한 해군 장교 출신으로, “문명은 허약하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잔혹하다”는 신념을 문학으로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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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론 – 우리 안의 파리대왕은 아직 살아 있다
『파리대왕』은 단지 소년들의 생존담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문명을 잃고, 욕망과 두려움에 굴복할 수 있는지를 고발하는 인간 본성의 보고서다.
오늘날에도 SNS 여론 몰이, 가짜 뉴스, 혐오와 분열을 마주할 때, 우리는 이 작품의 거울 앞에 선다.
“파리대왕은 섬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안에도 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정교한 문명도,
공포와 권력욕 앞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그 가혹한 진실을, 윌리엄 골딩은 가장 단순한 설정으로 증명해냈다.

『파리대왕』은 인간 본성과 문명에 대한 가장 불편하고 가장 정직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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