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김낙수인가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겼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은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 다. 드라마를 보며 나는 묻는다. 나는 김낙수인가? 아니, 우리는 모두 조금씩 김낙수가 아닐까?
25년차 세일즈맨 김낙수는 한 번도 승진을 놓친 적 없는 에이스 다. 서울에 자가 아파트를 보유하고, 명문대생 아들까지 둔 그는 스스로 “위대한 삶”이라고 자부 한다. 그가 입버릇처럼 외치는 말, “대기업 25년차 부장으로 살아남아서, 서울에 아파트 사고 애 대학까지 보낸 인생은 위대한 거야”라는 선언 속에는 이 시대가 강요한 성공의 공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드라마가 리얼하게 그려내는 건 바로 이 ‘성공’의 허상이다. 김낙수는 자신의 성공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서열화시키고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비교 한다. 후배가 반포 대단지 68억짜리 아파트에 산다는 말을 듣고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척도로 우리 삶을 재단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드라마 속 김낙수는 1972년생 혹은 빠른 1973년생으로, 대한민국 인구 집계상 출생 인구가 가장 많았던 시기에 태어나 평생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온 인물 이다. 그들은 IMF를 겪었고, 카드대란을 견뎠으며, 금융위기를 통과했다. 회사에 충성하면 회사가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세상은 말한다. 그 방식은 틀렸다고. 워라밸이 중요하다고. 수평적 조직문화가 필요하다고.
김낙수는 소위 ‘꼰대’로, 모든 것을 돈으로 서열화시키고, 집과 차로 사람을 평가하며, 자신에게 득이 될 공은 처세술로 챙기고 불리한 일은 남에게 떠넘기려 하는 인물 이다. 밉상이다.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상사의 전형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김낙수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밉살스러운 면 뒤에 달라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점이 큰 실수일 뿐, 회사에 몸바쳐 성실히 일하기만 하면 합당한 대가를 받을 것이라 믿으며 소처럼 우직하게 걸어온 인생 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단지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니라, 세상이 성공이라고 규정한 것들을 위해 안간힘을 써온 인생 이었다. 그래서 행복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없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진, 행복이라 믿었지만 실은 성공에 집착하는 왜곡된 행복관만이 남았을 뿐이다.
드라마는 중년의 회한을 단순히 슬픔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지금껏 믿어왔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에, 자율성과 창의력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김낙수가 들이미는 답안지는 정답이 아니라 오답에 가까울 뿐 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내 편이라 믿었던 사수마저 자신을 공장으로 보내버리고, 아들은 대기업 대신 정체불명의 스타트업을 택한다. 아내는 남편의 승진을 가늠하며 제2의 인생을 고민한다.

이 드라마가 우리 가슴을 후벼 파는 이유는, 시청자가 김낙수에게서 우리의 아버지를 보고, 언제고 닥칠지 모를 나의 미래를 보기 때문 이다. 김낙수가 철석같이 믿었던 공식이 낡아버렸듯, 지금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들도 미래에는 낡아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시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김낙수가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대기업 부장이 아닌 진정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 를 그려낸다. 온갖 수식어를 떼어내고도 온전히 ‘김낙수’일 수 있는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김낙수인가?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김낙수다. 타인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고, 사회가 정의한 성공을 쫓으며,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하지만 이 드라마가 위로가 되는 것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년의 회한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제라도 진짜 나를 찾아가려는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김낙수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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