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스터 라디오에 대한 추억
60년대와 70년대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시대였다. 나는 그 시절,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옆에 두고 자란 세대다. 그 작은 기계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수단을 넘어선,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통로였다. 당시에는 TV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고, 라디오는 많은 가정에서 가족이 모여 즐기던 중심이었다. 하지만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이 소리는 더 이상 거실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길을 걷거나 친구들과 모여 있을 때, 언제 어디서나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성장하던 시절, <별이 빛나는 밤에>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0시의 다이얼>같은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별이 빛나는 밤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DJ들의 목소리는 마치 친구처럼 친근했고, 그들이 전해주는 사연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듯했다. 방송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엽서를 써서 사연을 보내곤 했고, 내 사연이 읽힐 때의 그 설렘은 잊을 수가 없다. 누군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듣고 울기도 했고, 누군가는 가슴 떨리는 첫사랑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그 시절, 나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 팝송을 처음 접했다. 당시 라디오 음악방송은 새로운 음악을 소개했고, 빌보드 차트에 오른 최신 팝송을 틀어주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의 목소리는 마치 먼 나라에서 온 꿈 같은 소리였다. 나는 그때 라디오를 통해 영어 공부를 하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정작 따라 부르다 보면 가사 대부분이 콩글리쉬로 변하곤 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 접했던 음악은 그 자체로 나에게 커다란 세상이었다. 당시에는 카세트 테이프가 있었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하는 것이 더 특별했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하고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가끔은 음질이 좋지 않은 거리의 리어카에서 팔던 카바이트 테이프를 사기도 했고, 테이프가 늘어질 때마다 그 소리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당시엔 나름의 추억이었다.
내가 자주 듣던 프로그램 중 하나는 동아방송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였다. 그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인 "La Reine de Saba"가 흘러나올 때면, 나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에 빠지곤 했다. 여성 DJ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엽서를 읽어주면, 마치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듯한 감성이 밀려왔다. 그 시절의 라디오 DJ들은 단순한 방송 진행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청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감성 전달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라디오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일부였고,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의 꿈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라디오는 전파를 타고 흐르는 노래와 사연을 통해 우리에게 시대의 감성을 전했다. 별이 빛나는 밤,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던 그 멜로디는 내 청춘의 배경 음악이었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내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따뜻한 추억이 다시 피어오른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주었던 그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그 시절 라디오는 단순한 기계가 아닌, 나의 추억을 담아주는 타임머신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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