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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마지막 인사

by 사마견우 2024.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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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들의 친구 아버지가 소천하셨다.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간의 이야기에서 처연함이 묻어나왔다.
나와는 연배가 비슷한 처지라 남의 일 같지 않아 그간의 상황을 정리하며 고인에 대하여 弔意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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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억 속으로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 전까지도 활기찼던 중년의 남자는 이제 거동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팔순을 넘긴 노부모가 계시는 홍천으로 요양을 내려온 지도 어느덧 몇 해가 흘렀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감과 통증이겠거니 생각했던 그의 몸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고, 결국 병명은 뇌종양으로 확정되었다. 가족들은 마음속 깊이 그의 회복을 바랐지만, 그와 동시에 점점 가까워지는 이별을 준비해야만 했다.

기억은 희미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남자는 주변을 조금씩 잊기 시작했다. 아들이 다녀가도 아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고, 가족들이 다정히 말을 건네면 그가 겨우 알아들은 대답은 한 마디뿐이었다.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한데... 우리 아들은 왜 안 오는 거죠?"

그 순간 아들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눈앞에 있었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아들은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버지가 어렸을 적 들려주던 따뜻한 이야기가 떠올랐고, 함께 자전거를 타고 논밭을 달리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 그리고 그 마음 속에 자신이 영원히 남아 있을 줄 알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이곳 홍천으로 내려온 이후, 자주 들르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는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늘 시간을 쪼개려고 애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곧 회복되시겠지’ 하는 작은 희망에 의지해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작은 희망마저 사라져버렸다.

오늘 새벽, 아버지는 끝내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의사는 "평화롭게 가셨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아버지의 손을 꼭 쥐고 있었지만, 그 손은 이미 힘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이제 그 손을 다시 잡을 기회는 없었다.

기억의 조각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은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곱씹었다.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음식, 함께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아버지의 웃음소리. 그것들은 이제 더 이상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일부로만 남아 있었다.

"아버지, 저 기억하시나요?"

어느 날 병상에서 아버지에게 다가갔을 때 아들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물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동안, 어릴 적 아버지가 자신을 처음 자전거에 태워 주던 날을 떠올렸다. "겁먹지 마라. 내가 항상 뒤에서 잡고 있다." 그 말은 아들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비록 말을 잊고 기억을 잃어갔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아들을 향한 사랑이 아직도 남아 있으리라는 희미한 믿음이 아들을 붙들고 있었다.

마지막 부탁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아들은 한 가지 소원을 가슴에 담았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에서 그가 가장 바랐던 것은 다름 아닌 한 마디였다. "괜찮다." 아버지가 언제나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해주리라는 그 마음이었다.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어쩌면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 속에는 모든 감사와 사랑이 녹아 있었다. 아들은 이제 비로소 그것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그 마음만은 영원히 남아 그를 감싸줄 것이었다.

영원한 안식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곳으로 떠나셨다. 아들은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버지가 편안한 안식을 찾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 그동안의 미안함과 사랑을 그 하늘 너머로 전하고 싶었다.

"아버지, 감사해요. 그동안 저를 지켜봐 주셔서."

이제는 아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며, 아버지에게 배운 그 사랑과 기억을 이어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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