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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인문학/영화

<버닝>

by 사마견우 2025.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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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 혹은 분노:
이창동 감독의 깊은 시선, <버닝>


영화는 때때로 현실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님 블로그 독자분들께 소개할 작품은 2018년 칸 국제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 Prize)을 수상하며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버닝>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현대 청춘의 좌절감, 사회적 양극화,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젊음의 불안과 모호함, 그리고 사라진 미스터리


문학을 지망하지만 글을 쓰지 못하는 청년 '종수'(유아인 분)는 우연히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해미'(전종서 분)를 만납니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정체불명의 재력가 '벤'(스티븐 연 분)을 종수에게 소개하고, 세 사람은 미묘한 관계를 이어갑니다. 어느 날 벤은 종수에게 자신의 은밀한 취미를 털어놓고, 해미는 종적을 감추게 됩니다. 종수는 해미의 실종 뒤에 벤이 있다고 직감하고, 그의 주변을 맴돌며 진실을 파헤치려 합니다. 영화는 과연 해미가 사라진 것인지, 벤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종수의 의심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를 모호하게 그리며 관객들을 깊은 혼란 속으로 이끕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감상 포인트와 의미심장한 장면들


<버닝>은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그 진가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영화가 던지는 다양한 질문들과 은유를 이해할 때 비로소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1.  '모호함'이 만들어내는 섬뜩한 서스펜스
    이 영화는 전통적인 스릴러와는 다르게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벤이 정말로 해미를 해친 것인지, 종수가 모든 것을 오해하고 착각하는 것인지, 혹은 해미의 존재 자체가 모호한 것인지 모든 것이 불분명합니다. 이창동 감독은 이 '모호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스릴러 장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관객은 종수의 시선을 통해 불확실한 단서들을 따라가며 스스로 진실을 재구성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2.  '비닐하우스'에 담긴 현대 사회의 그늘
    영화에서 벤은 자신이 주기적으로 '비닐하우스'를 불태운다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비닐하우스는 쓸모없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을 상징합니다. 이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공허한 상류층 벤과, 가난하고 무력한 하류층 종수의 간극을 상징하는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려지는 수많은 존재들을 은유하는 강력한 이미지로 작용합니다. 종수가 느끼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박탈감은 벤의 '비닐하우스' 이야기와 겹쳐지며, 사회적 불평등이 낳는 폭력적인 에너지를 표출합니다.


3.  청춘의 고독과 허무주의를 담은 전종서의 춤
    해미가 노을 지는 언덕 위에서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춤을 추는 장면은 <버닝>의 백미이자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나는 존재하고 싶어"라고 외치는 듯한 그녀의 몸짓은 현대 젊은이들이 느끼는 깊은 고독과 허무함을 표현합니다. 언뜻 자유로워 보이지만, 곧 사라져 버릴 듯 위태로운 그녀의 춤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되며, 영화가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의 무게를 더합니다. 전종서 배우의 매혹적인 연기 또한 이 장면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4.  압도적인 연기 앙상블
    유아인, 전종서, 스티븐 연 세 배우의 연기 또한 이 영화를 놓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불안정하고 분노에 차 있는 종수,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듯한 해미, 그리고 모든 것을 가진 듯하면서도 섬뜩한 미스터리를 풍기는 벤. 세 배우는 각자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영화의 밀도를 높입니다. 특히 스티븐 연의 서늘한 연기는 관객에게 지속적인 긴장감을 안겨줍니다.

우리님, 미스터리 너머의 삶의 진실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동참해 보세요!

<버닝>은 관람 후에도 오랫동안 곱씹게 되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입니다. 영화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대신, 우리는 종수의 시선을 통해 현대 사회가 감추고 있는 불확실성, 분노, 그리고 소통 부재의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미스터리를 푸는 것을 넘어, 우리 주변의 '버닝'되지 않고 남아있는 비닐하우스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버닝>이 주는 깊은 울림을 통해 우리님과 독자분들이 각자만의 '진실'을 찾아 나서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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