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로그 연재소설]
대책 없는 긍정주의자의 로또 라이프
제3화. “로또보다 어려운 현실의 계산법”
1. 갑자기 가계부라니
“여보! 나, 가계부 쓰기로 했어!”
월요일 아침, 김희망(40세, 대책 없는 긍정주의자)은 의욕 충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부엌에서 토스트를 굽고 있던 박현실(38세, 냉철한 현실파이터)은 토스터기 옆에 팔을 기댄 채 남편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또 뭐 꾸민 거야, 김희망.’
“왜? 어디서 또 무슨 영상 봤어?”
“아냐, 이번엔 진짜야. 가계부를 쓰면 돈이 안 새고, 흐름을 정확히 알 수 있대. 내가 왜 맨날 돈이 부족한지 알아야 하잖아. 그래야 투자든 뭐든 전략이 생기지.”
희망은 당당하게 노란색 공책을 들이밀었다.
겉표지에는 또박또박 적힌 글씨,
<2025년 부자 가계부 프로젝트>
현실은 빵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그러면, 로또 지출부터 적었어?”
“…그건 좀 다른 항목이지. ‘희망투자’니까.”
“아, 나 진짜.”
희망은 민망한 듯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어쨌든 이번 주부터 제대로 해볼 거야. 나도 이젠 정신 차렸다고.”
“그래. 그럼 카드값도 적어봐. 지난달 네가 긁은 거.”
희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난달 것도 적어야 돼?”
“응. 그게 가계부거든. 그리고 한 달 전 카드명세서 캡처해서 프린트해놨으니까 여기.”
현실은 이미 인쇄해둔 종이 뭉치를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희망은 그것을 넘기다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세상에… 내가 ‘단백질 보충제’만 18만 원어치를 샀다고?”
“그거 먹고 살 빠졌어?”
“…아니. 변비만 왔는데.”
“그러면 이 항목은 ‘건강관리’가 아니라 ‘불필요한 체험비’로 넣자.”
희망이 공책에 ‘불필요한 체험비 -18만’이라 적으며 입을 삐죽였다.
‘현실은… 너무 현실적이야.’
⸻
2. 현실의 가르침
그날 저녁, 희망은 공책을 펼친 채 한 손에는 전자계산기, 다른 손에는 형광펜을 쥐고 있었다.
“아니, 이게 왜 안 맞지? 현금 잔고는 분명히 80만 원인데, 계산상으로는 120만 원이 남아야 하거든?”
“그건 너의 기억력이 문제지.”
“내 기억력?”
“너 ‘서프라이즈 선물’로 뭔가 샀다고 카드 긁은 거 기억 안 나?”
“…아. 당신한테 사준 그 핸드크림 세트?”
“그거 나 알러지 있어서 못 쓴다고 했는데?”
“…그래도 마음은 전했잖아?”
“그건 ‘애정표현’이 아니라 ‘예산 낭비’야.”
현실은 희망의 가계부 옆에 앉으며 공책을 슬쩍 넘겼다.
“이 항목 봐. ‘자기계발비 – 유튜브 프리미엄’ 11,900원. 넌 유튜브로 ‘로또 분석 영상’만 보잖아.”
“그래도… 미래를 위한 연구잖아.”
“그건 ‘도박학 개론’이야. 자기계발이 아니라 자기착각.”
희망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전자계산기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로또보다 이게 더 어렵다.”
현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제야 제대로 된 현실 감각이 생겼네.”
⸻
3. 가계부의 진짜 의미
다음 날 아침.
희망은 공책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여보.”
“왜?”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 가계부… 그냥 숫자 적는 게 아니더라.”
“응?”
“이건 나라는 사람의 ‘의지 기록’ 같아.
내가 무슨 생각으로 뭘 샀고, 왜 돈이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
현실은 잠시 멈춰 그를 바라보았다.
희망의 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빛이 있었다.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볼게. 도망 안 가고, 끝까지 가계부 써볼게.”
현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네가 꿈꾸는 로또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란 건 알고 있지?”
“응. 근데 이상하지? 로또보다도 이게 더 설레.”
그 순간, 희망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지만,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현실은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오늘은 가계부 마감일이니까, 커피는 내가 쏜다.”
희망이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와! 무료 커피라니! 오늘은 행운의 날이야!”
그리고 그 말 뒤에 조용히 덧붙였다.
“…로또는 다음 주부터 잠깐 쉬어야겠다.”
현실이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응. 진짜.”
그녀는 희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드물게 그의 손을 잡았다.
“그래, 김희망. 너도 드디어 현실을 살기로 마음먹은 거네.”
희망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현실이 너무 예쁘니까, 따라가기로 했어.”
그리고 두 사람은 조용히 함께 커피를 마셨다.
숫자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정말 오랜만의 시간이었다.
그날 가계부에는 이렇게 적혔다.
[2월 27일]
커피 0원 – 아내가 사줌
의미: 오늘만큼은 로또에 안 흔들린 나를 칭찬한다.
희망, 잘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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