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로그 연재소설]
대책 없는 긍정주의자의 로또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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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잠자는 남편의 휴대폰
금요일 밤, 희망은 일찍 잠들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로또 얘기도 안 꺼냈고, 앱도 지운 지 몇 주째였다.
박현실은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희망이 너무 조용할 때가 제일 위험해…”
그녀는 소파에서 남편의 휴대폰을 힐끔 바라보다가
그만, 잠깐만… 정말 잠깐만 보기로 한다.
잠금 해제는 늘 쓰던 생일 6자리.
툭. 열렸다.
그리고 최근 검색기록에 떠 있는 키워드.
“서울 유명 점집”
“로또 잘 맞추는 무속인”
“초능력자 후기”
현실은 손에 쥐고 있던 쿠션을 입에 가져가 비명을 삼켰다.
“이 인간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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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요일 아침의 진실
“좋은 아침이야~”
희망이 상쾌한 얼굴로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현실은 이미 커피를 다 마신 얼굴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어디 다녀왔어?”
“어디긴, 집에 있었지.”
“그래?”
현실은 휴대폰을 들고, 화면을 남편 얼굴 앞에 보여줬다.
지도 앱에 남아있는 위치 기록.
도봉구 XXX길 11. 백운당 점집
희망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는다.
“어… 그게…”
“그게 뭐?”
“그냥… 지나가다, 정말 우연히 보게 됐는데,
거기 앞에 ‘기적의 로또 1등 연속 3회 적중!’이라고 써 있어서…”
“그래서?”
“들어가봤지…”
“거기서 뭐라던데?”
희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정말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무속인이 말했어.
내 사주는 ‘움직이면 돈이 나가는 사주’래.
그래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래.”
“…그래서?”
“그래서 다음 주 로또는 온라인으로만 사려고.”
현실은 그 말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주저앉았다.
“너, 진짜… 정말 끝까지 나를 시험해보는 거지?”
희망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근데 여보… 그 무속인이 정말 기가 막혔어.
내가 꿈에서 자주 물고기를 본다고 했더니
그건 돈이지만, 너무 튀면 튀어서 도망간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물고기 그물’을 사야 한다나 뭐라나…”
현실이 헛웃음을 지었다.
“너 지금 그물까지 사겠다는 거야?”
“아니. 진짜 그물은 아니고… 상징적으로, 종이로 그물 모양을 만들어 집안에 걸어두면 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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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응 전략 회의
토요일 저녁.
현실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부엌에서 작전회의를 열었다.
참석자: 박현실.
안건: 김희망의 비과학적 환상 제거 프로젝트.
그녀는 노트북을 펼치고 화면을 공유했다.
<무속인 사기 유형 TOP 5>
<로또 맞추는 법? 전부 낚시입니다>
<초능력, 사주, 그리고 확률의 진실>
그녀는 희망을 불렀다.
“자기야, 앉아봐. 오늘은 ‘희망 교양 특강’이야.”
희망은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의자에 앉는다.
“무속인, 초능력자, 그리고 로또 번호 예측.
이 셋이 공통으로 가진 건 뭔지 알아?”
“…꿈과 희망?”
“아니. 현실 회피.”
현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넘기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 네가 속고 있는 거야.
너는 진짜 뭔가를 믿고 있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인 척하면서 책임을 미루는 사람이 된 거라고.”
희망은 그 말에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다.
“그래도… 그 무속인이 내가 ‘진짜 착한 사람’이라고 했어.”
“그러면 넌 ‘착한 바보’야.”
“….”
현실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부드럽게 말했다.
“착하면 뭐해. 당신이 그 착함으로 집에 재정적 폭탄만 떨어뜨리잖아.
나는 당신이 나쁜 사람 되는 걸 무서워하는 게 아니야.
무책임한 사람 되는 게 더 무서운 거야.”
그 말에 희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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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변화의 조짐
그날 밤.
희망은 책상 앞에 앉아 조심스레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무속인이 적어준 ‘기운 받는 부적 도안’이었다.
그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서랍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대신 꺼낸 건,
적금 통장.
그리고 펜으로 한 문장을 썼다.
“진짜 기적은, 오늘을 책임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바보처럼 믿던 것들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었다.
현실은 그런 그를 지켜보며, 조용히 불을 끄고 말했다.
“다음 주에도 점집 안 가는 거지?”
“응. 안 가.”
“로또는?”
“…그건 아직 자신 없어.”
“그래도, 계속 싸워볼 거지?”
“응.”
현실은 희망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 그게 내가 사랑한 당신이니까.”
그날 밤, 두 사람의 집에는
물고기도, 부적도, 숫자도 없었다.
다만, 한 걸음 더 성숙해진 ‘희망’만이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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