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란다 한켠에 놓인 꽃화분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던 그날, 나는 아무런 목적 없이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화분 안에는 막 꽃망울을 터뜨린 꽃들이 있었다.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듯, 꽃잎 하나하나가 팽팽하게 살아 숨 쉬며 작은 몸으로 온 힘을 다해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미 절정을 지난 꽃들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꽃잎 끝이 갈색으로 물들고, 한때 그토록 곧게 서 있던 줄기는 이제 조금 굽어 있었다. 피어나는 것과 져가는 것이 단 하나의 화분 안에서 나란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걸렸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도 꼭 그 화분을 닮아 있다. 한 가족 안에도, 한 동네 안에도, 심지어 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피어나는 무언가와 져가는 무언가가 늘 함께 존재한다. 젊음과 늙음이 같은 밥상에 앉고, 설렘과 그리움이 같은 가슴을 오간다. 새로 시작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마무리되는 인연도 있다. 우리는 늘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흔히 사람들은 시드는 것을 슬퍼하고, 피어나는 것만을 아름답다 여긴다. 하지만 화분을 바라보며 나는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져가는 꽃이 있었기에 새로운 꽃이 그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었고, 지난 꽃의 향기가 흙 속에 스며들어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드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꽃화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거창하게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다만 피어날 때는 온전히 피어나고, 질 때는 미련 없이 지는 것. 내 곁에 막 피어나는 이가 있다면 그 빛을 가리지 않고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리고 이미 져가는 이가 있다면, 그 자리에 담긴 오랜 향기를 알아보는 것. 서로 다른 계절이 한 화분 안에서 다투지 않고 공존하듯, 우리도 그렇게 나란히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햇살이 조금 더 기울었다. 꽃화분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드리워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 한 바가지를 떠다 화분에 조용히 부어주었다. 피어난 꽃에게도, 져가는 꽃에게도 똑같이.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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