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를 처음 만난 건 서른 살 무렵이었다. 그 시절 나는 시라는 걸 잘 몰랐지만, 이 시 하나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꽃이 피어나는 데는 그토록 오랜 공을 들이면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더라는 그 대비. 그리고 그 비유가 결국 향하는 곳은 꽃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는 일은 그렇게 더디고 힘겨운데, 잊는 일은 어째서 꽃 지듯 순간일 수 없는가 — 시인은 오히려 그러기를, 잊는 것도 순간이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그런데 시의 마지막 연에서 그 소망은 뒤집힌다.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참으로 오래, 영영 오래 걸리더라는 것. 사랑이 사람 마음에 남기는 시간의 비대칭을 이렇게 담담하고도 절절하게 표현한 문장을 나는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시는 오랫동안 내게 '사랑'의 시였다. 이별의 시였다. 성인이 되고 처음 마음 깊이 새긴 문학 작품이라 그런지,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마다 이 시의 리듬이 저절로 입안에서 맴돌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다. 부끄럽게도, 이 아름다운 시를 떠올리는 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증권 계좌를 열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난다.
주가가 오르는 건 그렇게 힘든데, 떨어지는 건 어쩜 이리도 순식간인지. 몇 주, 몇 달을 조금씩 조금씩 힘겹게 올라온 종목이 뉴스 하나, 발표 하나에 하루 만에 원점으로 돌아가 있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오르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도 없이, 매도 버튼 한 번 눌러볼 틈도 없이, 정말이지 아주 잠깐이더라는 것.
시인이 잊는 것도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다고 했던 그 마음, 나는 요즘 손실도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다고 바란다. 오늘 떨어진 마음의 상처가, 오늘의 하락폭이, 다음 날 아침이면 봄눈 녹듯 사라져 있기를. 그러나 시의 마지막 연이 다시 나를 붙잡는다.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그렇다, 주가는 하루 만에 무너져도 그 손실을 마음에서 지우는 데는, 그리고 무엇보다 계좌 잔고가 원래대로 회복되는 데는 영영 한참이 걸리는 법이다.
생각해보면 시인이 노래한 사랑의 생리와 주식 시장의 생리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공들여 쌓아 올린 것은 더디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에. 그리고 그 여운은 무너진 시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길게 남는다는 것.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은 적어도 다시 피어날 여지라도 있지만, 물린 종목은 상장폐지라는 결말도 있다는 사실 정도랄까.
이십대의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사람을 그리워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어제 판 종목의 오늘 시세를 확인한다. 시인에게는 좀 죄송한 일이지만, 좋은 시는 이렇게 세월이 지나도 계속 새로운 얼굴로 우리 삶에 스며드는 게 아닐까 — 라고 애써 자위해본다. 그래도 님, 언젠가 다시 이 시를 순수하게 사랑의 시로만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때는 부디 내 계좌도 함께 회복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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