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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自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다시 읽으며

by 사마견우 2025.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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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가을, 교실 창가에 앉아 처음 접했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중년의 어느 날 다시 내 곁으로 찾아왔다. 노란 단풍잎이 흩날리는 숲속의 두 갈래 길. 그때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다가왔던 시구가, 이제는 내 삶의 축소판이 되어 가슴 깊이 울린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 시간에 처음 이 시를 배웠을 때 나는 얼마나 단순했던가. 두 갈래 길 앞에서 고민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결단'과 '도전'이라는 메시지만을 읽어냈다. 덜 걸어진 길을 선택한 용기있는 결정이 인생을 달라지게 만들었다는 단순한 해석에 멈췄다. 그리고 나도 언제나 남들과 다른, 덜 걸어진 길을 선택하겠노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중년이 된 지금, 시의 의미는 훨씬 더 깊어졌다. 시인이 말한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달라지게 했다"는 구절이, 이제는 약간의 아이러니와 함께 다가온다. 실제로 두 길은 "똑같이 아름답게 놓여" 있었고, 선택의 순간에는 어느 쪽이 덜 걸어진 길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점을 이제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지난 수십 년간 나는 수없이 많은 갈림길 앞에 섰다. 대학 진학, 직업 선택, 결혼, 이직...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했지만, 솔직히 그것이 정말 '덜 걸어진 길'이었는지, 혹은 그저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서 자신의 결정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을 '덜 걸어진 길'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안다. 프로스트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선택에 부여하는 의미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젊은 날의 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앞에서 두려움 없이 도전하겠다는 단순한 결심을 했지만, 중년의 나는 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내가 걸어온 길이 특별했든 아니든 그것이 바로 '나의 길'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가을 숲속의 두 갈래 길. 젊은 날에는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었다면, 이제는 내가 걸어온 길이 만들어준 추억과 경험, 그리고 그것이 빚어낸 현재의 나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시인은 "언젠가 한숨 쉬며 이야기하리라"고 했지만, 나는 이제 한숨 대신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모든 선택이 옳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내 인생이었다고.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진정한 용기는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임을. 후회 없이 걸어온 길이 아니라, 후회하더라도 그 길을 선택한 자신을 끝까지 믿는 것임을. 프로스트의 시는 여전히 내게 말을 걸어온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나는 이 깊어진 이해가, 바로 세월이 내게 준 선물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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