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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自作

습설(濕雪)

by 사마견우 2025.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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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가는 어느 날, 창밖의 쌓인 눈을 바라보며 묵직한 생각에 잠겼다. 마당 한켠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눈의 무게를 못 이기고 가지가 휘어져 있었다. 무심코 바라보던 그 모습이 문득 내 모습 같아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스물 안팎의 젊은 시절엔 모든 것이 가볍고 청량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신록처럼 생의 무게도 우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 어느새 젖은 눈처럼 무거운 책임들이 가지마다 쌓여간다.

자녀의 미래, 노부모님의 건강, 직장에서의 위치, 그리고 늘어나는 백발까지. 이 모든 것들이 축축하고 무거운 눈이 되어 내 어깨를 누른다. 때로는 그 무게에 휘어질 것만 같은 순간도 있다. 마치 저 설해목처럼,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설해목의 휘어진 가지 끝에서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무거운 눈을 이기지 못해 휘어진 그 자리에서도, 봄을 기다리며 새로운 생명을 틔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네 인생같았다.

휘어진다고 꺾인 것이 아니듯, 무거움을 느낀다고 해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무게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지도 모른다. 젖은 눈이 녹아 토양의 자양분이 되듯, 중년의 무게도 언젠가는 우리 삶의 깊이가 되어줄 것이다.

창밖의 설해목을 바라보며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계절을 견디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휘어진 가지마저도 결국엔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이 무거운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가리라는 것을.

봄이 오면 눈은 녹을 것이고, 휘어진 가지는 또다시 하늘을 향해 뻗어나갈 것이다. 우리의 중년도 그러하리라. 지금의 무게는 언젠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며,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더욱 의연하게 서 있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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