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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自作

일요일 아침, 빌런이 되다

by 사마견우 2025.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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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 보니 식탁 위에 하얀 종이에 곱게 싸인 빵이 놓여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가볍게 아침을 해결하려던 참이라 별다른 고민 없이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식감, 밀도가 상당한 빵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시중에서 먹던 베이글과는 달랐다. 훨씬 더 쫄깃하고 묵직한 느낌. ‘어디서 이런 걸 사왔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궁금증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미 나는 그 빵을 깔끔하게 해치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엄마! 내가 어제 사 온 런던베이글 어디 있어?”

방에서 딸아이가 후다닥 뛰쳐나오더니 식탁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꼭 크리스마스 아침, 기대하던 선물이 사라진 아이처럼, 그녀는 초조한 눈빛으로 식탁 서랍을 열어보고, 냉장고도 열어보고, 심지어 전자레인지까지 확인했다. 그러나 빵은 어디에도 없었다. 딸은 곧장 엄마에게 달려가 물었다.

“엄마, 내가 어제 번호표 500번 받고 겨우 산 런던베이글 어디 둔 거야?”

“어? 나는 안 먹었는데…”

순간, 정적이 흘렀다.

딸의 시선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게로 향했다.

“…설마.”

그제야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 그 빵? 내가 먹었는데. 맛있더라!”

당당했다. 너무나 당당했다. 그러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딸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내 런던베이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는 가슴을 치며 절규했다. “500번! 500번이나 기다렸다고! 2시간 반 동안 줄 서서 샀다고!!!”

그제야 나는 그 빵이 단순한 베이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아무 빵이 아니었다. 인내와 집념, 땀과 눈물의 결정체였다. 나는 단순히 아침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딸의 지난 하루를 송두리째 삼켜버린 셈이었다.

그제야 내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데…?’

엄마는 황급히 딸을 달래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일 엄마가 서울 가서 또 사 올게.” 하지만 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외쳤다.

“아냐! 내가 어제 먹었어야 해! 그때 먹었어야 했다고!!!”

딸의 절망 앞에서 나는 졸지에 ‘베이글 빌런’이 되어버렸다. 가족의 원수, 인간 말종, 배신자. 모든 비난이 내게 쏟아졌다. 순간 나도 억울해졌다.

“아니, 빵이 있길래 먹었지! 누가 그게 그렇게 소중한 줄 알았냐고!”

그러나 내 변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딸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나는 런던에도 가 본 적 없는 사람이 런던베이글을 원망하는 기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렇게, 일요일 아침. 나는 역사상 가장 억울한 빌런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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