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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自作

엄마라는 짐, 사랑이라는 굴레

by 사마견우 2025.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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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엄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과일 한 봉지, 직접 담근 장아찌, 몇 년을 써 낡아빠진 커튼, 무거운 극세사 이불, 때로는 돈.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애정과 간섭과 부담.

엄마는 늘 나를 위해 뭔가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주는 방식’이 싫었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걸 주는 법이 없었다. 오직 엄마가 ‘주고 싶은 것’만을 건넸다.
그것이 아무리 내게 필요 없는 것이어도, 내가 거듭 싫다고 말해도,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거부하면 상처받았고, 나를 나쁜 딸로 만들었다.

“나는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너는 왜 그렇게 까다롭니?”
“이게 다 널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엄마의 사랑은 그렇게, 이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짐


엄마가 내게 사랑을 쏟아부을수록, 나는 그 사랑에 짓눌렸다.
엄마의 손에는 언제나 무거운 짐이 들려 있었다.
그 짐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힘겹게 걸어와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짐을 받지 않았다.
나는 짐을 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방식대로 사랑받고 싶지 않았다.

“엄마, 이제 그만 가져와. 나 필요 없어.”
“이런 걸 나한테 주면, 엄마가 마음이 편해?”
“엄마가 주고 싶은 거 말고, 내가 필요한 걸 줘.”

그러면 엄마는 상처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사랑을 거절하는 불효막심한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마는 그렇게 내게 상처받았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상처받았다.
서로에게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끝없이 아프게 하는 사이.

포기와 이해 사이


어느 날, 나는 결심했다.
엄마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엄마가 싸들고 오는 음식과 물건을 의미 없는 짐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그것이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면, 그냥 받아들이기로.

그러자 관계가 한동안 평온해졌다.
엄마는 여전히 과일을 싸 왔고, 나는 여전히 그 과일을 먹지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또 무거운 꾸러미를 들고 나타났다.
이번에는 사과, 배, 감, 포도, 커다란 오렌지까지.
나는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엄마, 제발 좀 그만해!”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엄마의 행동은 예전과 똑같았지만, 그걸 받아들이려 했던 내 인내심은 바닥났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방식대로 사랑했고,
나는 여전히 그 사랑이 버거웠다.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건 안다.
그리고 나도 엄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내게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주는 것’보다,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엄마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사랑은 이해보다 깊이 새겨진 본능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저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고,
나는 ‘받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엄마의 사랑은 무겁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랑을 짊어지고 싶지 않다.
엄마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하지만, 멀리해야 할까.
고맙지만, 거리를 두어야 할까.
애틋하지만, 지쳐버린 이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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