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8월 15일 춘천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우리는 늘 그렇듯 운동장 한쪽 구석, 큰 느티나무 아래에 모였다.
상준이 도시락을 꺼내며 말했다.
“야, 너 ‘방석 전설’ 알지?”
“방석 전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금방 기억이 났다. 학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미신 같은 전통. 학력고사 100일 전에 여고 3학년 교실에서 방석을 가져와 시험 당일에 깔고 앉으면 무조건 대학에 붙는다는 이야기였다.
“아, 그거? 그냥 허무맹랑한 소리 아니냐?”
“야, 너 몰라서 그래. 우리 학교 선배들 중 실제로 그걸 실행한 사람들, 대학 잘 갔다고.”
나는 피식 웃었지만, 마음 한쪽이 묘하게 동요했다. 지금 우리는 학력고사 100일 전. 이 전설을 이행할 마지막 기회였다.
“그래서, 우리도 해보자는 거냐?”
상완은 씩 웃으며 밥 한 숟갈을 입에 넣었다.
“야, 기왕이면 전통도 계승하고, 대학도 가고, 일석이조 아니냐?”
나는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그렇게 우리의 무모한 ‘방석 작전’이 시작되었다.

1983년 8월 15일 밤 9시 – 향교 담장 앞
“야, 너 진짜 올 줄 몰랐다.”
“미쳤냐? 약속했는데 안 오게.”
나는 작은 손전등을 들고 상완과 함께 여고와 맞닿은 향교 담장 앞에 섰다. 한밤중이라 길거리는 고요했고, 여고 담장 너머로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어떻게 넘어가지?”
“여기서 이렇게 올라가면 돼.”
상준이 담을 타고 오르려다가 발을 헛디뎌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야, 조용히 좀 해!”
우리는 숨을 죽이고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인기척은 없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상완을 끌어올렸고, 우리는 간신히 담장을 넘어 여고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숙직 선생님 어디 계실까?”
“글쎄, 교무실 쪽일 텐데.”
우리는 몸을 낮추고 재빠르게 학교 건물 쪽으로 향했다.

C여고 1층 창문 – 한밤중의 침입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섰다. 발을 디딘 순간, 삐걱—
우리는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봤다. 마루바닥이라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야, 진짜 조용히 해야겠다. 한밤중이라 소리가 더 크게 들려.”
나는 숨을 죽이고 복도를 따라 걸었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심장을 철렁이게 했다.
“중앙 계단으로 가야 해.”
“알았어.”

3층으로 가는 길 – 유령보다 무서운 것들
중앙 계단을 향해 가는데, 벽에 걸린 대형거울이 우리를 비췄다. 순간, 우리는 얼어붙었다.
“야… 저거 뭐냐?”
어둠 속에서 거울에 비친 우리의 형상이 유령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거울이야, 거울… 괜히 겁먹지 마.”
우리는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이번엔 계단 옆에 세워진 사람 모양의 조형물이 문제였다.
“으악!”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상준도 나를 따라 움찔했다.
“뭐야, 사람인 줄 알았잖아!”
우리는 긴장을 풀고 다시 계단을 올랐다.

3학년 11반 교실 – 환상의 붕괴
드디어 3학년 11반 교실에 도착했다. 문제의 방석이 보였다. 상준이 그것을 집어 들며 웃었다.
“야, 이제 우리 합격이다.”
나는 벽에 걸린 교훈을 바라보았다. “성실, 순결, 봉사”
우리는 준비해온 우리 학교의 교훈, “正道”를 꺼내 교체했다.
그런데 막상 여고 교실을 보니, 내가 상상했던 분위기와 달랐다. 책상 위엔 낙서가 가득했고, 창틀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나는 막연하게 ‘여학교는 깨끗하고 정돈된 곳’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저 또 다른 평범한 교실이었다.
“야, 환상 깨진다.”
“그러게.”
우리는 방석을 챙기고 재빨리 학교를 빠져나왔다.

1983년 8월 16일 – 사건 발각
다음 날 아침, 우리 반은 떠들썩했다.
“야, 우리 교훈 바뀐 거 봤어?”
“뭐? ‘성실, 순결, 봉사’가 뭐냐?”
담임선생님은 교훈이 바뀐 것도 모른 채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학생부장은 금방 상황을 파악했고, 반장은 곧장 교무실로 끌려갔다.
나는 상준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가 가야겠지?”
“그래. 반장만 고생하게 둘 순 없지.”

학생부에서의 고초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니들이 감히 교훈을 바꿔?”
손바닥을 맞고 얼차려를 한 후, 다시 여학교로 가서 교훈을 원래대로 바꿔놓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C여고 – 전교생의 환영
여학교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수천 명의 여학생들이 창가에 몰려 나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이거 뭐냐.”
상준이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는 교무실로 가 훈계를 들었는데, 그곳엔 한 여학생이 무릎을 꿇고 벌을 받고 있었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그녀와 나란히 서서 훈계를 들었다.
“너희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라.”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3학년 11반에 가 교훈을 원래대로 되돌려놓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훈훈한 마무리
학교로 돌아오니 담임선생님이 우리를 불렀다.
“고생했다.”
나는 놀라 선생님을 쳐다봤다.
“여학교에서 혼나는 건 없었냐?”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우리의 무모한 방석 작전은 끝이 났다. 결과적으로 전통을 계승하긴 했지만, 대학 합격은… 또 다른 문제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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