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로그 연재소설]
대책 없는 긍정주의자의 로또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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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짓말처럼 조용한 남편
이상했다.
너무 조용했다.
평소라면 토요일 아침, 김희망(40세, 희망을 가장한 불안)을 깨우는 건 알람보다 먼저 터지는 남편의 음성이다.
“오늘은 느낌이 와!”
“이번 주 번호는 다르다고!”
“꿈에 물고기가 나왔어!”
하지만 오늘은 없었다.
아내 박현실(38세, 언제나 의심 중)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는데도, 희망은 이미 거실에서 말없이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이어폰까지 끼고.
심지어 웃지도 않고.
심지어 중얼거리지도 않고.
너무 조용하니까 불안했다.
현실은 찬찬히 다가가 그를 바라봤다.
노트북 화면에는…
[주간 경제 브리핑 – 적금과 ETF, 어디에 넣어야 할까?]
심장이 멎을 뻔했다.
“…김희망?”
희망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 여보! 일어났어?”
“너 지금… 경제 뉴스 보고 있었어?”
“응! 요즘 예금 금리가 다시 오른다더라. 그냥 이렇게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현실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이지. 누가 이 남자한테 백신이라도 맞췄나…’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로또는?”
“안 샀어.”
“진짜?”
“응. 아예 어제 지나가면서 편의점에 들르지도 않았어.”
현실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이제는 나도 알아. 그게 희망이 아니라 환상이라는 걸.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현실에서 도망만 쳤던 거 같아.”
이 말, 어디서 카피해온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멋졌다.
하지만 그는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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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희망의 수상한 변화
며칠이 지나고, 희망은 실제로 로또 얘기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심지어 ‘수상한 꿈’을 꿨던 날도.
현실은 점점 불안해졌다.
‘말을 안 할 때가 제일 무섭다더니, 진짜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희망이 말없이 노트북을 닫더니 말했다.
“여보, 우리 이번 주말에 시간 돼?”
“왜?”
“은행 가서 적금 통장 만들자.”
현실은 놀라서 포크를 놓았다.
“…적금?”
“응. ‘한 달에 한 번, 로또에 쓰던 돈’으로 적금 들면 1년에 120만 원 모으더라.
그거 모이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진짜 필요한 곳에 쓰는 거.”
현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김희망. 너 혹시 무슨 병 진단받은 거 아니지?”
“뭐야, 왜 그래. 진짜로 바뀌면 안 돼?”
“아니, 너무 조용하니까 무서워서 그래…”
희망은 웃었다.
“나는 바뀌는 중이야. 당신 덕분에.”
순간, 현실의 눈가에 뜨거운 감정이 스쳤다.
하지만 그건 단 24시간만의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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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밀의 흔적
다음 날.
현실은 우연히 희망의 책상 위에 놓인 노란 포스트잇을 보게 된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3, 12, 25, 36, 41, 9’
익숙한 숫자 조합.
로또 번호.
그리고 포스트잇 아래, 작게 적힌 메모.
‘이번 주엔 안 산다. 이겨낸다.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이 번호는 어쩐지 계속 마음에 남는다…’
현실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변화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완전한 단절은 아니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희망도, 로또도.
그날 밤, 희망은 방 안에서 조용히 ‘로또 앱’을 지우는 장면을 현실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녀는 묻지 않았다.
희망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오래된 습관을 한 뼘 더 미뤄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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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랑이라는 이름의 현실
일요일 아침.
두 사람은 함께 은행 창구에 앉아 있었다.
희망은 통장 개설서를 작성하며 중얼거렸다.
“매달 10만 원씩, 12개월…
와, 이거 다 모이면 로또 1등보다 현실적인 부자가 될 수 있겠네.”
현실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응. 대신 매주 ‘실망할 확률’은 0%.”
“그리고 매달 ‘성취감’은 100%.”
그들의 현실은 여전히 팍팍했고, 로또 같은 행운은 없었지만
조금은 따뜻했고,
조금은 웃겼고,
조금은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다.
희망이 말했다.
“이런 게 진짜 행운 아닐까?”
현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직도 넌 좀 구질구질하긴 하지만…”
“그치만 이제 그 구질구질함도 귀엽게 보이지 않아?”
“…그건 두고 보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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